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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나루세 미키오 특별전> 여자로서 산다는 것 (struggle to live as a woman)

     이번에 시네마테크 세 곳에서 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작품들을 상영하는 특별전을 했다. 아직 특별전이 끝이 나진 않았고, 한국영상자료원 KOFA에서 2016년 3월 6일(일)까지 계속된다.[1] 하지만 보고자 했던 나루세 미키오 영화들은 일단 다 보았기에 이렇게 회고해보려고 한다. 이번 특별전에 다른 시네마테크에 가보지는 못 했고, 한국영상자료원 KOFA에서만 관람했다. 개인적으로 정말 최고의 극장이라고 칭하고 싶다. 어느 면에 특화된 개성이 있는 극장은 아니지만, 과하지 않고 실로 부족함도 없다. 극장의 정석같은 느낌. 이번 특별전동안 1관의 G, H, I, J열 중간부분에서 관람했고, 앉았던 모든 자리에 다 만족할 수 있었다. 굳이 제일 좋았던 자리를 꼽자면 개인적으로 H열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이렇게 어디 하나 빠질 것 없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비용이 무려 공짜다. 요즘 극장 가격이 기본이 만원이 넘는 현실에서 영화를 공짜로 볼 수 있다는 점은 분명 큰 장점일것이다. 하지만 이 점이 단점이 되기도 한다. 이번 특별전 도중에 한번은 어느 노인분께서 코골고 주무신적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천원이던 500원이던 받는게 어떨까 하는 생각은 해보지만, 너무 매정한거 아니냐고 자신을 나무래 본다. 이렇듯 이 좋은 극장이라고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큰 단점이라면 접근성이다. 위치상 서울 중심에서 많이 떨어져있기 때문에 아쉽게도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기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다행히 우리집과는 가까워 좋은 극장에서 나루세 미키오의 영화들을 챙겨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번 특별전에서 본 나루메 미키오 감독의 영화의 공통된 테마는 "여자"였다. 보통의 영화가 여성을 성상품으로써 소비하는 것과는 달리, 한 인간으로써의 여자가 살아가는 모습을 특히 그 고달픔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의 작품을 관통하고 있는 이러한 "여자"라는 테마에서 그의 작품들을 이야기하고 한다.


<번개> (1952)

교육, 자유연애 등을 항한 강한 열망을 가진 신여성을 다룬 상당히 계몽주의적인 색체가 짙은 작품이다. 지금이야 교육과 자유연애가 당연한거지만 1952년 영화임을 생각해보면 상당히 진보적인 생각임을 알 수 있다. 여기에 경제문제와 치정문제 등을 다루고 있다. 여자로서 경제적 독립의 어려움,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의 어려움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결국 이 모든 장애물에서 벗어나 여성이 주체적으로 살기 위해 독립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산의 소리> (1954)

여자가 놈팽이 같은 남편을 만났다. 하지만 시아버지가 너무 잘해주시기 때문에 떠나지 못하고 남아있는 며느리. 하지만 결국 며느리는 떠나고자 하고, 그런 그녀를 시아버지가 놓아주는 이야기이다. 그 때 시아버지가 며느리에게 하는 대사가 이 영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너는 자유다. 나의 시시한 위로가 너를 속박했구나." 여자에게 자유를 선언하는 멋진 장면.


<부운> (1955)

참 지독한 사랑을 다룬 작품이다. 바람둥이 남자를 사랑하는 한 여자의 미친 사랑이 이야기의 전부다. 하지만 이야기를 잘 들여다보면 여자가 남자에게 선택받는게 아니라 남자를 직접 선택한다는 점에서 놀라운 주체성을 보여준다. 비록 그 과정이 지독하고 그 끝이 비극적이지만, 본인이 선택한 남자를 끝까지 사랑하는 저력을 보여준다.


<흐르다> (1956)

게이샤를 다룬 작품. 여성이 주체적으로 살기위해, 경제적으로 독립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는게 고작 이정도 뿐이다. <부운>에서 여주인공이 경제적 어려움에 미군에게 몸을 팔고, <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에서 바의 마담이 주인공인 것과 같은 맥락이다. 게이샤는 고급 인력이지만 이 또한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하향세의 직업이다. 결국 경제적 어려움으로 집이 팔리고, 본인들은 모르지만 그 집은 이제 음식점이 될 비극적 운명을 맞이한다. 이와중에 또다른 살길을 찾기위해 미싱을 사서 일하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다양한 모습의 여자들이 등장해서 그들의 삶과 선택을 심도있게 보여준다. 또 여러 남자가 대쉬하지만 본인이 선택한 남자만 사랑하는 점에서 다른 영화들과 일맥상통한다.


<권적운> (1958)

컬러 2.35:1의 시네마 스코프로 처음 찍은 작품이다. 주로 다루는 이야기는 농촌사회에서 벌어지는 신시대와 구시대의 충돌이다. 처음엔 신시대가 구시대에 발목잡히는듯 보이지만 결국 구시대가 신시대를 위해 많은걸 희생하는 내용이다. 이렇듯 신시대에 서있던, 구시대에 서있던, 결국 신시대를 맞이해야했던 모든 사람들이 감내했던 통증을 치우치지 않은 관점과 깊은 통찰력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물론 여기서도 여자는 빠지지않는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교육받은 신시대 여성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고모가 있다. 나루세 미키오의 모든 작품이 그러하듯 주체적으로 한 남자를 사랑하지만 결국 이또한 이루어지지 못하는 가슴 아픈 사랑이 된다.


<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 (1960)

흑백, 시네마 스코프. <흐르다>가 게이샤를 다루었다면, <여자가 계단을 오를 떄>는 바의 마담이 주인공이다. 남편이 전사해서 바의 마담이 된 그녀는 나루세 미키오의 다른 영화들이 그렇듯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다. 바 또한 사장이 따로 있고 고용된 마담이다 보니 미래가 걱정이 된다. 그래서 직접 바를 열고자 하지만 보통 돈이 없기 때문에 다른 여자들은 남자 스폰을 끼고 바를 연다. 하지만 주인공은 스폰없이 바를 열고자 한다. 여자로서 이 사회에서 경제적 독립의 어려움. 여러 남자가 대쉬하지만 본인이 선택한 남자하고만 어떠한 물질도 바라지 않고 관계를 맺는 여성의 주체성을 보여준다.


<흐트러지다> (1964)

흑백, 시네마 스코프로. 전쟁으로 과부가 된 형수와의 사랑을 다룬 작품. 이번 작품에서도 변화해가는 시대상이 중요한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다. 골목으로 자본이 유입되면서 소매상들이 몰락해간다. 결국 이 소매상 주인이었던 남자 또한 살아남기위해 거대자본을 받아들여 슈퍼로 바꾸기로 한다. 하지만 그동안 소매상을 이끌어나가던 과부 형수는 본인이 걸림돌임을 알고 스스로 집을 나가 친정으로 돌아간다. 이러한 형수를 남자는 쫓아가게된다. 하지만 18년동안 희생이 아닌 본인이 원했던 삶이었다고 말하는 그녀는 중요한 순간에 결국 남자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나루세 미키오의 다른 영화들은 여자가 주체적으로 선택한 사랑을 앞뒤 안보고 밀고나가고 남자 쪽에서 너를 사랑하지만 기존의 가정을 깰 수 없다는 등의 비겁한 태도로 인해 결국 잘 안되는 비극적 결말을 맞이한다. 반면에 이번 작품에서는 여자 측에서 끝내 본인의 굴레를 깨지 못하고 본인의 사랑을 밀고 나가지 못한다. 결국 끝까지 밀쳐진 남자가 비극적 결말을 맞이한다,


<흐트러진 구름> (1967)

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유작. 컬러, 시네마 스코프로. 어떻게 보면 <흐트러지다>의 연잔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고, 쌍둥이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형수와의 사랑에서 남편을 사고로 죽인 남자와 여자 사이의 사랑이라는 더욱 이루어지기 어려운 사랑을 다루고 있다. <산의 소리>, <흐트러지다>에서와 마찬가지로 남편의 가족에 속하지만 완전히 남편의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며느리의 신세를 잘 보여준다. 남편이 죽자 결국 호적에서 쫓겨나고 연금을 못받는 지경에 이른다. 여자는 <번개>에서의 신여성이라고 할만한 인물로 대학교 영문학과를 나올정도로 교육도 받았지만, 남편이 죽고 경제적 어려움에 사회로 나서지만 아직도 사회에서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이번 작품에서도 여자 측에서 끝내 속박을 깨지 못하고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흐트러지다>와 다르게 비극적 결말을 겪진 않는다.


나루세 미키오만큼 여자의 삶을 심도있게 다룬 감독도 적을 것이다. 더불어 그의 작품에는 늘 다양한 인간군상과 변해가는 시대상이라는 흥미로운 이야기 거리가 공존하고 있다. 일상을 이렇게 흥미롭게 그리고 심도있게 다룰 수 있다는 점에서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다.


[1] http://www.koreafilm.or.kr/cinema/program_view.asp?g_seq=147&p_seq=9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