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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헤이트풀8> 웃으면 안될거같은데 웃음이 나온다

리뷰입니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해주세요.

     10개의 영화를 찍으면 은퇴하겠다는 믿을 수 없는 말을 하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8번째 영화 <헤이트풀8>이다. '8'번째 영화답게 <헤이트풀 '8'>인 이 영화의 제목은 굳이 번역하자면 "증오에 가득찬 8명" 정도 되겠다. 이렇게 독특하게 지은 제목만큼이나 서부극치고는 영화의 배경도 독특한데, 바로 와이오밍의 설원이 영화가 펼쳐지는 장소라는 점이다. 사막도 아니고 설원의 서부극이라니 도저히 종잡을 수 없다. 이런 배경만큼이나 마찬가지로 이야기도 도저히 예측이 불허하다. 영화를 어느정도 이해하는게 아니고서는 하기 힘든 그런 이야기 흐름 방식을 쿠엔틴 타란티노는 취한다. 그렇기 때문에 매번 그의 영화를 볼때마다 그가 영화라는 매체를 정말 잘 이해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영화의 기본적인 정석을 잘 따를듯 말듯 따를듯 말듯 조절하는 능력이 가히 천재적이다. 그래서 늘 그의 영화는 무언가 신선하게 다가온다. 거기에 더불어 늘 그렇듯이 그의 영화에는 수많은 인물들을 등장하는데 이 수많은 인물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개성을 입히고 배치할 것인지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있다. 그의 이러한 장점들은 이번 영화에서도 십분 발휘된다.

     마치 김전일이나 코난이 그러하듯 인물들이 갑작스런 눈보라로 인해 특정 지역에 갇히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마치 김전일이나 코난이 그러하듯 그 안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하지만 영화는 단순히 추리물같이 사건이 벌어지고 범인을 색출하고 끝이나는 것이 아닌, 사건이 벌어지게되는 과정과 범인을 찾는 과정과 찾고난 후 벌어지는 사건들로 조직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영화가 (168분의 런닝타임) 조금은 길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내내 영화가 너무 길다는 느낌은 받을 수 없었다. 여튼 그렇게 그곳에 갇히게된 8인 혹은 그 이상의 사람들에게 벌어지는 사건의 총채적인 전말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축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가 흥미로운 점은 이 모든 것들이 영화적 문법 내에서 기대를 저버리는 상당히 독특한 형식으로 벌어진다는 점이다. 흔히 추리물이라면 범인은 한명이거나 혹은 공범이 있는 최대 두병에 가까운데 마차를 타고온 사람 이외에 전부 범인이였다던가. 안 죽을 것만 같았던 인물들이 죽어나가는데, 특히 주인공 급으로 영화 초반을 이끌던 존 루스가 오비와 함께 죽어버린다거나(이 둘은 워렌 소령과 자칭 보안관 메닉스를 위해 판을 깔아주는 역할정도로만 볼 수도 있다). 갑자기 등장한 영화 속 인물(사실 갑자기 등장한건 아니고 오프닝 크레딧에 이름이 등장한다. 물론 이런 식으로 나오고 퇴장할줄은 몰랐지만)이 워렌 소령의 중요부위를 쏴버리면서 극이 확 틀어진다던가. 근데 갑자기 등장한 그 인물은 지하에서 올라오는 순간에 얼굴 한번 못 보여주고 머리가 터져버린다거나. 영화는 일종의 관객과의 약속이다. 그러다보니 영화라면 늘 최종 보스가 멋지게 등장하고 자신의 존재의 베일을 벗고 주인공과 대립하면서 극이 클라이막스로 흐르고 뭐 이런 극적 장면들을 관객들은 기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의 영화에는 그런 점이 없었다. 관객들이 전장면을 보고 기대하게 되는 요소를 뒤에 그냥 비틀어버리는데 이 점이 괴상하면서도 참으로 즐겁게 다가온다. 여기에 무언가 과장되고 B급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향수들을 더한다. 유혈이 난무하고, 독을 먹고 피를 토하고, 머리통이 터지고, 살점이 떨어져 나간다. 아 웃으면 싸이코패스로 의심받을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지만서도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 가 없었다. 거기다가 도대체가 이해할 수 없는 순간에 슬로우모션을 사용하곤 하는데 정말 영화를 보는내내 골때린다는 생각 뿐이었다. 아마 이런 의미에서 웃음이 나온게 아닌가 뒤늦게 추정해본다. 그렇다고 골때린다는 점이 영화를 비난하는 말인가 하면 그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이 점이 이 영화를 흥미롭게 만드는 장점 중에 최대 장점이다.

     영화는 이런 쿠엔틴 타란티노의 잡화점 위에 미국의 역사와 그 역사와 함께한 인종갈등이라는 요소를 살짝 덮는다. 예전에 <노예 12년> 리뷰 때도 적은적이 있었지만 미국은 한때 북부와 남부로 갈라져 있었던 적이 있었다. 북부의 노예제를 반대하던 링컨이 대통령이 되자 남부는 이에 반발하고 노예제를 계속하기 위해 아메리카 합중국 USA(United States of America)을 탈퇴하고 아메리카 연합국 CSA(Confederate States of America)을 만들었다. 이후 둘이 전쟁을 하게되고 이를 남북전쟁이라 한다. 여기서 링컨의 북부가 승리하고 노예제는 미 전역에서 폐지된다. 하지만 이후에도 미전역에선 흑인에 대한 증오범죄(Hate Crime)가 넘쳐났다. 이렇듯 영화 속에 등장한 중요 키워드들로 한 나라의 역사를 얘기할 수 있을만큼 이 영화는 미국의 역사 그리고 인종갈등과 관계가 깊다. 이 점은 영화 내내 등장하는 대사인 "Nigger"와 "Black"으로도 잘 나타나는데, "Nigger"는 흑인을 비하하는 말이고 "Black"은 그냥 부르는 말이었다. 자막으론 전부 깜둥이 정도로 번역되는지라 이 뉘앙스의 차이를 관객들이 알기 어려웠지않을까 염려스럽다. 여튼 흰말과 검은말이 맨앞에서 마차를 끌었듯이, 후에 북부군 출신 워렌 소령과 남부군 메닉스 장군 아들 크리스가 연합을 하게된다. (크리스는 워렌 소령을 영화내내 "Nigger"라고 불렀지만 이때 그를 "Black Bastard"라고 부른다.) 그리고 극악한 도머그를 나름의 그들만의 재판?으로 목매단다. 이런 장면들은 미국 역사와 미국 특유의 정의 구현(약간은 독선적인) 정신 그 자체이다. 2009년 작인 <바스터즈: 거친녀석들>에서 히틀러한테 총 구멍을 샐수 없이 낸적이 있었던 쿠엔틴 타란티노라는 점에서 참으로 그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헤이트풀8>은 쿠엔틴 타란티노가 자기 마음대로 가지고 노는 한편의 장난같은 영화이다. 이런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를 보고있으면 그와 긴 잡담을 하는 느낌이다. 그와 잡담을 하는 와중에 그의 농담에 박장대소를 하며 낄낄거리며 웃고 있는 것만 같다. 분명 누군가는 옆에서 보고 실없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들 어떠한가 이렇게 즐거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