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뷰

<자객 섭은낭> 한폭의 동양화처럼

리뷰입니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해주세요.

     프레임 안에 빈 공간없이 꽉 들어찬 서양화와 여백의 미를 뽐내주는 동양화. 다른 가치관을 가진 두 지역에선 이렇듯 미술품도 그 가치관에 따라 다르게 발달했다. 그렇다면 영화는 어떤가? 영화는 예술 중에서도 가장 밀도가 높은 예술이다. 그런 점에서 꽉 들어찬 서양화같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 <자객 섭은낭>은 이러한 계보를 거부한다. 한폭의 동양화처럼 절제하고 절제하고 또 절제하는 미학을 보여준다.

     우선 음악을 절제한다. 섭은낭의 모친이 습격을 당할 때 나오는 음악을 제외하면, 그저 둥둥치는 북소리가 대부분이다. 혹은 가끔 영화 속에서 연주하는 음악이 전부다. 그리고 대사를 절제한다. 서기가 연기한 주인공인 섭은낭의 대사는 "아이를 못죽이겠다", "전계안을 못죽이겠다" "호희 임심했다" 그리고 부친에게 얘기하는 가성공주의 이야기가 전부이다. 주인공인데도 불구하고 대사가 정말 없다.

     감정을 절제한다. 전반적으로 모든 배우들이 감정을, 리액션을 절제하지만 걔중에서 단연 주인공인 섭은낭의 감정 절제는 극단적이다. 영화 내내 섭은낭은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하는데, 이런 섭은낭에게도 감정의 순간이 딱 두번 등장하는데 이마저도 절제한다. 섭은낭의 목욕씬에서 섭은낭의 얼굴에 눈물이 흐른듯한 자국이 등장하지만 정작 눈물의 시작과 끝은 보여주지않는다. 이후 섭은낭이 가성공주의 옥을 받고 꺼이꺼이 울게되는데, 이번에도 절대 우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천으로 얼굴을 가린다.

     컷과 카메라 워킹을 절제하고, 액션을 절제한다. 기존의 홍콩 무협영화의 화려하고 정신없고 강한 액션과 연출이 없고, 또한 대륙의 압도하는 스펙타클이 없다는 점에서 과연 이 영화를 무협영화라고 해도 괜찮은가 싶을 정도이다. 이렇듯 점잖은 카메라 워킹과 롱테이크를 선호해서 약간 호흡이 긴 영화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하다 하다 서사마저 절제한다. 영화는 원작 소설을 토대 위에 뻔한 사랑이야기와 정치세력간의 권력투쟁 이야기가 얹혀있기 때문에 강력한 모티브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흔히 "극적이다"라고 말하는 요소를 철저히 절제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의 고저가 적고, 설명도 부족하다보니 사람들이 느끼기에 이게 도대체 무언가 싶을 것 같다. 그러다보니 분석을 할만한 서사적 특징점은 없다. (그냥 이해하는게 어려울뿐) 그래도 살짝 오바해서 과잉해석해보자면 대만의 허우 샤오시엔이 감독하고, 대만의 서기, 대만의 장첸, 일본의 츠마부키 사토시가 등장하는 이 영화의 결말이 대만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닌데, 약간 어울리지 않게 과잉이라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미술이다. 영화 미쟝센 혹은 영화미술 뭐라고 불러도 상관없지만 화면을 채우고 구성하는 측면에서 절제에 실패하지 않았나 싶다. 대륙의 기상이 솓구친 이후에 등장한 중국영화에서 쉬이 볼 수 있는 과잉에는 미치진 못하지만 그 영향을 받은듯한 느낌을 받았다. 또한 화면비에서 너무 힘을 준 것이 아닌가 싶다. 아무래도 화면을 와이드로 하지않은것은 절제의 테마 안의 맥락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가 3개의 다른 화면비로 구성되어 있는 점은 조금 납득하기 힘들다.

1.37 : 1 흑백 프롤로그
1.41 : 1 컬러 타이틀 이후
1.85 : 1 칠현금 연주하는 한 장면
출처 - imdb

가성공주의 칠현금 연주장면을 꼭 와이드로 영사해야했다면 그 정도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초반부의 1.37:1과 이후의 1.41:1로 나누어져있는 점은 다소 이해하기 어렵다. 개인적으로는 그냥 영화내내 쭈욱 1.37:1로 구성했어도 충분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렇듯 화면구성과 화면비의 결정에 있어서 약간의 절제를 발휘했다면 좀더 절제라는 테마에 어울렸을 것이다.

     영화에 극적인 서사가 없고, 화려한 활극도 없다. 그래서 영화를 관람하고 대중의 사랑을 받기엔 글렀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영화 상영 후 많은 사람들이 그 분노을 대놓고 표출해서 본의 아니게 이러한 고충을 듣기도 하였다. 그래도 영화를 단순히 스토리텔링의 도구를 넘어서 영화 그 자체에서 어떤 예술적, 미학적 새로움을 찾고자했던 감독의 뜻은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소설 섭은낭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