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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러브레터> 잊혀짐 속에서 되찾은 옛 사랑의 애잔함

     수요일에 <러브레터> 디지털 리마스터링 재개봉 기념으로 이동진 기자님의 시네마톡을 하셨는데 거기에 다녀왔습니다. 보통 본래 자신의 생각마저도 시네마톡에서 타인의 입을 통해 들으면 자신의 것이 아닌것처럼 느껴져서 리뷰를 쓰지 않는 편입니다. 하지만 워낙 좋아하는 감독의 두번째로 좋아하는 영화인지라 리뷰를 쓰게되었습니다. 이와이 슌지의 영화 중에서 첫번째로 좋아하는 영화인 <릴릴슈슈의 모든것>도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통해 극장에서 관람할 수 있길 바라봅니다.



리뷰입니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해주세요.

     이 영화는 잘 몰라도 "오겡끼 데스까?!"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정도로 영화 <러브레터>는 한국에서 꽤나 유명하다. 한국에서 일본 멜로 영화, 아니 국적불문으로 그냥 멜로 영화 해도 떠올릴만한 하나의 상(image)에 속할 정도로 우리에게 각인된 멜로영화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전형적인 멜로와는 궤를 달리하는 편이다. 영화 속에서 현실이라고 일컬여지는 시간의 축에는 멜로의 주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무슨말이냐하면 남자 후지이 이츠키는 이 영화 속 멜로의 주인공이지만 영화 속 현실에선 죽은 사람이다! 사랑을 깨닫고, 장애물을 극복하지만, 짧은 사랑 이후에 어찌할 수 없이 비극적으로 한쪽이 죽어버리는 이야기는 많았다. 하지만 영화 처음부터 죽은 사람과의 열애를 다룬 영화가 또있는가? 아마도 <사랑과 영혼 (영제 : ghost)> 정도가 생각날 수 있다. 근데 <사랑과 영혼>의 패트릭 스웨이지는 영혼으로 현실에 존재하고 데미 무어와 교감한다. <사랑과 영혼>은 오히려 (영혼으로서지만) 살아있다가 장애물을 극복하고 짧은 사랑 이후에 죽는 전형적인 비극적 멜로의 형태에 가깝다. 하지만 <러브레터>는 조금 다르다. 교감은 커녕 남자 후지이 이츠키는 10년전 중학생 때의 모습으로만 등장할뿐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런 독특한 "부재하는 자와의 열애"라는 소재를 통해 우리네 감정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랑의 기억을 들쳐내면서 자극한다. 열애의 대상이 처음부터 부재하기에, 짧은 사랑 이후에 한쪽이 사라져버리는 다른 영화보다도 더 애듯하고, 애잔하고, 이 어찌할 수 없는 감정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응어리를 형성한다. 하지만 이와이 슌지는 단순히 독특한 멜로 이야기에서 멈추지않고 구조주의적 관점에서도 굉장히 흥미로운 구성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영화는 얼굴이 같은 와타나베 히로코와 여자 후지이 이츠키의 두 축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초반부는 와타나베 히로코로 진행되지만 중반에는 여자 후지이 이츠키가 중심이 되고, 와타나베 히로코와 열병을 앓는 여자 후지이 이츠키가 같이 "오겡키데스카"를 외치고, 여자 후지이 이츠키에게 편지를 돌려주는 시점에 가면 완전히 여자 후지이 이츠키에게 이야기의 주체를 넘겨버린다. 이 와타나베 히로코와 여자 후지이 이츠키의 두 축은 얼굴이 같듯이 굉장히 비슷한 형태를 띄는데, 성격이 완전 정반대이듯이 결말에 이르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우선 이 둘이 강력하게 얽혀있는 지점은 바로 사랑하는 이의 부재이다. 여자 후지이 이츠키는 아버지가 죽었고, 와타나베 히로코는 남편 혹은 준결혼 상태였던 남자 후지이 이츠키가 죽었다. 이는 처음 병원에서 여자 후지이 이츠키가 비몽사몽 속에서 본인의 이름을 들으면서 남자 후지이 이츠키를 떠올리는 순간에 잘 나타난다. 남자 후지이 이츠키가 언듯 언듯 지나가면서 죽은 아버지가 병원에 실려오는 순간이 동시에 등장한다. 그리고 또 여자 후지이 이츠키가 남자 후지이 이츠키가 죽었다는 사실을 선생님에게 듣게 되었을 때, 여자 후지이 이츠키는 돌아가는 길에 10년전 아버지 장례식에서 돌아오는 길에 보았던 얼음 속에 죽은 잠자리를 떠올린다. 이는 두 남자의 부재가 결국 같이 결부되어있음을 강력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이 둘의 축은 완전히 곳을 지향하게 되는데, 여자 후지이 이츠키는 본인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과거의 사랑을 되찾게 된다면, 와타나베 히로코는 과거의 사랑을 놓아준다. 이렇듯 두 축이 지향하는 점은 완전히 반대편을 향하고있다.

     또한 영화가 흥미로운 점이 마치 <인셉션>처럼 양파를 까듯 이미 버러진 사건의 진실에 하나 하나 파고든다는 점이다. 남자 후지이 이츠키가 죽었고, 여자 후지이 이츠키의 아버지도 죽었지만 영화 초반부에 정확히 어떻게 어떤 식으로 죽었는지 알려주진 않는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영화는 이 둘의 죽음의 모습에 쌓여있던 베일을 하나 하나 벗겨가며 그 실체를 보여준다. 동시에 이러한 과정 속에서 또한 남자 후지이 이츠키와 여자 후지이 이츠키의 사랑의 모습을 향해 하나 하나 나아간다. 이렇듯 서브 플롯들이 메인 플롯인 남자 후지이 이츠키와 여자 후지이 이츠키의 사랑을 견고히 받히면서 이야기는 나아간다. 이 과정에서 사실 논란도 많은 것이 남자 후지이 이츠키는 여자 후지이 이츠키를 지금도 사랑하느냐이다. 이에 관련된 증거는 꽤나 많이 나오는데 우선 와타나베 히로코와 여자 후지이 이츠키의 얼굴이 같다는 점. 남자가 죽을때 부른 노래가 본인이 싫어하던 마츠다 세이코의 "푸른 산호초"의 "아- 내 사랑은 남풍을 타고 달려요" 부분이라는 점이다. 이는 남자 후주이 이츠키가 있는 코베에서 여자 후지이 이츠키가 있는 홋카이도의 오타루로 가는 남풍을 뜻한다. 이때 와타나베 히로코의 표정을 보면 완전히 그 사실을 깨닫고 남자 후지이 이츠키에 대한 마음을 접는다. 하지만 그래도 좋은 추억이었다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대인배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후 그녀는 그 유명한 "오겡끼데스까"를 하고 모든 편지를 여자 후지이 이츠키에게 돌려준다. 이것들은 그녀에게 속해있다며. (사실상 여자 후지이 이츠키와 남자 사이의 러브레터.) 이 노래는 1980년 7월에 나온 노래인데 두 후지이 이츠키가 사랑을 했던 중학교는 1981~1983년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 여자 이츠키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제7권 부제 "되찾은 시간"의 도서카드 뒷면의 그림을 확인하고 남자 후지이 이츠키의 사랑을 깨닫는 순간 바람이 불면서 영화는 끝난다는 것이있다. 결국엔 남풍을 타고 도달한 남자 후지이 이츠키의 사랑에 대한 연출이 돋보이는 장면이다.

     또한 이 영화를 칭찬할 때, 빠질 수 없는 수려한 영상미가 있다. 초반에 좀 과하게 글레어(뽀샤시)가 많이 되어 있긴 하지만, 빛을 정말 섬세하게 잘 잡아내는 편이다. 실내 장면이면 어김없이 바깥에서 들어오는 빛을 끼고 촬영을 하는데 창문에서 들이치는 빛을 잡아내면서 피사체의 디테일도 놓치지않는다. 이를 통해 애잔하고 애듯한 영화의 분위기는 배가 된다. 이는 어쩌면 조명감독, 촬영감독의 승리일 수도 있고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인 이와이 슌지의 해안일 수도 있다. 하지만 후에 수 많은 한국 뮤직비디오가 따라하게되는 (하지만 제대로 재현하지못한) 원흉이기도 하다. 또한 감각적인 편집을 보여준다. 보통 평이하게 테이크를 잡아가는 편이지만 중요한 순간에 많은 앵글들을 짧게 잘라 넣는 편집을 하곤 하는데 역시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다운 직접 편집을하는 감독의 감각이 돋보인다. 또한 광각렌즈를 써야할 때, 망원렌즈를 써야할 때, 클로즈업을 해야할 때, 롱샷을 해야할 때, 트랙인을 해야할 때가 완벽하다. 개인적으로 촬영 공부하기에 딱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더불어 음악까지 굉장히 수려해서 "A Winter Story"는 한국 TV에 수시로 나오곤 했으니 말 다했다.

     이렇듯 20년이 지난 영화였지만 이번에 다시 감상하게 되면서 다시금 감동과 이 영화의 대단함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너무 오래되었다고 생각할 수 도 있는 영화이지만 여전히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대하지 못하고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동아시아 문화권에선 통할수 있는 감성을 담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남자 후지이 이츠키가 마지막 가는 순간에도 여자 후지이 이츠키에게 자신의 사랑이 닿기를 기원하며 불렀던 그 노래로 리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