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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낙원의 밤>, 플롯(스토리텔링)의 관점으로 보는.

[스포일러 경고]

아래 글에는 박훈정 감독의 <낙원의 밤> 뿐만 아니라 이정범 감독의 <아저씨>, 워쇼스키 자매의 <매트릭스>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박훈정 감독의 <낙원의 밤>을 보면 인상적인 부분이 많다. 재연 역의 전여빈의 마지막 총쏠때의 표정. 마이사 역의 차승원의 일거수 일투족. 또 조폭같지 않게 굉장히 현실적이고 일상화된 인물들(양사장, 총기 밀매 조직 보스). 하지만 이야기에 있어서 이상하게 앞부분은 루즈하고, 뒷부분은 타이트하다. 또 재연과 태구의 관계를 와닿게 느끼지 못하는 관객도 많다. 왜그럴까? 그 이유는 플롯에 있다.

스토리텔링은 그리스 시대부터 기록이 남아있다. 하지만 아마 그 이전부터 인류와 함께 계속 되어왔을거로 추정한다. 그만큼 오래 발전해온 기술?이다. 이 기술의 핵심에는 플롯이 있다. 이야기를 토막내고 적절히 배치하면 그것이 플롯이 된다. 플롯은 리듬이나 노출시간 같은 인간의 동물적인 본능에 기인하고 있어, 제대로된 플롯을 갖추면 그 이야기를 듣는 관객은 이야기 몰입하고 인물에 공감하게 된다. 현대에 정리된 플롯은 아래와 같다.

 

*1막: 일상

배경, 인물과 인물사이의 관계 설정.

*1차 플롯 포인트

적의 출연, 주인공의 일상이 깨어짐.

*2막: 반응

주인공이 수동적으로 끌려다님.

*중간 플롯 포인트

무언가 계기가 되어 주인공이 각성하게 됨.

*3막: 공격

이제 주인공이 주도적으로 적을 몰아세운다.

*2차 플롯 포인트

마지막으로 정보가 주어진다.

*4막: 해결

결국 주인공이 모든 사건을 해결하고 마무리된다.

 

그럼 예시를 한번 보자. 유명 헐리우드 영화로 전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워쇼스키 자매의 <매트릭스>이다.

 

*1막: 일상

낮에는 회사에서 일하고 밤에는 해킹을 하는 해커 네오는 매트릭스를 어렴풋이 눈치 챈다.

*1차 플롯 포인트

네오는 모피어스와 트리니티를 만나 모피어스가 건낸 빨간 약을 먹는다. 적은 매트릭스다. 그것이 구체화된 존재는 매트릭스 내에서는 요원, 현실에서는 센티넬이다.

*2막: 반응

네오는 훈련을 받고, 오라클을 만난다. 하지만 오라클은 네오가 선택받은 자(the one)가 아니라고 한다.

*중간 플롯 포인트

오라클을 만나고 돌아가는 길에 요원들을 맞딱드린다. 모피어스가 네오를 구하기 위해 요원들에게 잡힌다.

*3막: 공격

네오는 모피어스를 구하기 위해 트리니티와 함께 요원들이 있는 빌딩으로 쳐들어간다. 각성한 네오는 기적을 행한다.

*2차 플롯 포인트

요원 총에 맞고 사망했던 네오가 트리니티의 키스로 되살아난다. 네오의 부활, 트리니티의 사랑으로 네오가 선택받은 자(the one)임이 명백해지는 순간.

*4막: 해결

요원을 처리한 네오가 현실로 돌아오고, 현실에선 극적으로 emp를 쏴서 센티넬을 떨군다.

마지막으로 네오가 매트릭스의 정지를 알리고 날아가며 끝.

 

이번에는 한국에서 성공을 거둔 이정범 감독의 <아저씨>다.

 

*1막: 일상

아저씨와 소미라는 인물을 설정하고 둘의 관계를 설정한다.

*1차 플롯 포인트

만석, 종석이 소미와 소미엄마를 납치해간다.

*2막: 반응

아저씨는 소미와 소미 엄마를 되찾기 위해 만석과 종석의 지시를 따라 마약을 전달한다.

*중간 플롯 포인트

만석, 종석의 배신. 소미엄마는 죽어있었고, 둘은 소미를 놓아줄 의도가 전혀 없었다.

*3막: 공격

아저씨가 대포폰을 시작으로, 도치, 종석을 찾아내고 죽인다. 이제 만석의 차례.

*2차 플롯 포인트

만석이 눈깔이 담긴 병을 굴리며 소미가 사망했음을 알린다.

*4막: 해결

분노한 아저씨는 람보완을 처리하고 "이거 방탄유리야"를 뚫고 만석을 죽인다. 그리고 사실 소미는 살아있었다.(반전) 아저씨는 소미를 뒤로 하고 경찰에게 잡혀가며 끝.

 

이정범 감독의 <아저씨>에서 흥미로은 지점은 반전이다. 관객이 반전을 반전이라 느끼는 이유가 바로 정석에 있다. 플롯 포인트라는 정석적인 정보 전달지점에서 거짓 정보를 끼워났다가 이야기 막판에 이를 푸는식이다. 그러면 관객은 이를 반전으로 느낀다. 결국 정석적인 플롯 없이 반전도 없다.

 

보면 알겠지만 두 영화의 국적도 다르고, 규모도 다르지만 같은 플롯을 가지고 있는걸 알수 있다. 현대 영화는 왠만한 위와 같이 4막과 3개의 플롯포인트로 구성되어 있다. 이제 <낙원의 밤>을 보자.

얼핏 <낙원의 밤>을 보면 태구가 주인공이니까 그의 일상이라면 그의 누나, 조카 그리고 깡패 세계에서 유망한 위치에 있다 정도로 1막을 생각하기 쉽다. 그리고 그러한 일상이 깨지는 1차 플롯포인트가 누나와 조카의 죽음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의 진짜 1막은 태구가 제주도로 가서 재연을 만나 시작하는 제주도 라이프이다. 그리고 진짜 1차 플롯포인트는 양사장이 북성을 처리하는데 실패하고 박과장의 조율로 양사장과 마이사가 서로 한패가 되는 순간이다.

 

*1막: 일상

도회장을 찌르고 제주로도 도피한 태구. 재연을 만난다.

*1차 플롯 포인트

북성을 처리하는데 실패한 양사장이 마이사와 손을 잡고 제주도로 넘어온다.

*2막: 반응

태구는 양사장과 마이사를 피해 도망친다.

*중간 플롯 포인트

재연이 양사장과 마이사에게 잡힌다.

*3막: 공격

태구는 양사장과 마이사를 찾아간다.

*2차 플롯 포인트

태구가 죽는다.

*4막: 해결

재연이 총기무쌍.

 

이 작품에서 진짜 중요한건 태구와 재연의 유대니까 영화는 처음부터 이것에 집중했어야했다. 깡패 세계에서 유망한 위치나 누나, 조카 그리고 그들의 죽음이란건 이후에 다른 인물들과의 대화에서 충분히 표현할 수 있다. 깡패 세계에 대해서는 쿠토와의 대화를 통해, 누나와 조카에 대해서는 재연과의 대화를 통해 정보를 제공할 수 있고, 또 이를 통해 태구와 그들 사이의 유대를 쌓을 수 있게 된다. 그렇지만 극이 시작하고 20분이 넘어서야 태구와 재연이 만난다. 131분하는 러닝타임에서 20분이 지나야 1막이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쿠토형님은 60분에 죽고, 양사장과 마이사는 83분에 제주도로 넘어온다. 이야기가 흥미롭게 흘러가기 시작하는 부분까지 83분이 지났다. 그래서 우리는 <낙원의 밤>을 보면 앞이 루즈하게 느껴지고, 뒤에는 너무 빠르게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최소한 이야기의 30분 즈음에 양사장과 마이사가 제주도로 넘어와 쿠토를 죽이고 태구와 재연은 같이 도망다니다가 재연이 잡혀야했다.

또 태구와 재연은 충분한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태구의 누나가 재연처럼 아팠다는 것, 그런 누나와 조카가 본인 때문에 죽었다는 것, 그래서 도회장을 찔렀다는 것, 그러고나서 제주도로 도망쳤다는 것. 이 정보들은 태구에게 재연이 유사조카이자 유사누나가 되어 이 둘이 유사가족이 되는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하지만 작중에서 태구는 이러한 정보를 단한번도 재연과 나누지 않기 때문에 몇몇 관객은 태구와 재연의 유대관계가 성립된 것처럼 느끼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이 작품의 핵심은 태구와 재연의 유대다. 태구는 재연을 위해 죽고. 재연은 태구를 위해 복수를 하고 죽는다. 그렇게까지 하기 위해서는 둘 사이의 깊은 유대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박훈정 감독의 <낙원의 밤>는 기대를 많이 했던 작품이다. 실제로 <신세계>와 <마녀>가 섞인 듯한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야기의 흐름 차원에서 여러모로 아쉬움을 지울 수 없었다. 훌륭했던 배우들의 연기가 이렇게 빛이 바랜게 참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