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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차이나타운> 인간의 근본적인 생존욕구

리뷰입니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있으니 주의해주세요.

     인간만큼 태어났을 때부터 약한 동물은 없습니다. 소는 태어나자마자 일어나서 스스로 어미의 젖을 찾습니다. 거미는 태어나면서부터 지 어미를 잡아먹습니다. 그에 반해 인간은 자기 목조차 스스로 가누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태어났을 때부터 생존을 위해 보호자를 필요로 합니다. 불행하게도 일영은 태어난 그 순간에도 보호자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지하철 보관함에 버려져 죽을 고비에 처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녀는 목청껏 울어 거지로부터 발견되고 살아남습니다. 이런 상황은 고스란히 어린 일영에게 넘어갑니다. 어린 일영이 거지에서 형사탁의 손에 넘어갈 때 그녀는 캐리어에 갇혔지만 거기서 나오기 위해 끊임없이 발버둥 칩니다. 그로인해 쓸만하다는 평가를 받은 일영은 엄마 밑으로 들어와 살아남습니다. 이런 상황은 또다시 엄마 밑에 있는 어린 일영에게 반복됩니다. 엄마 밑에 있던 아이들이 전부 버림을 받습지만 그녀는 인천 차이나타운의 엄마의 집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짜장면을 곱빼기로 달라고 하면서 그녀는 또다시 살아남습니다. 그녀의 이러한 생존욕구는 이렇게 식욕으로 표출됩니다. 이런 표현은 극 전반에 걸쳐 계속 등장합니다. 이런 생존욕구는 생존“의지”가 아닌 인간 내부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입니다. 그녀의 울음소리, 깨물고 발버둥치고, 집으로 다시 찾아가기, 쓸모있음을 입증하기 전부 같은 맥락입니다. 그렇게 엄마 밑에서 생존을 보장받았던 일영이지만 이제 막 20대가 되면서 위기가 찾아옵니다. 일영은 박석현이라는 인물을 만나게 되는데 그녀는 여기서 그녀가 경험하지 못했던 다른 세계를 보게 됩니다. 박석현은 그 스스로도 다른 세계로의 열망을 가진 인물로써 일영과 다른 세계 사이의 끈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박석현 또한 일영과 마찬가지로 보호자로부터 버림받게 되면서 파멸을 맞이합니다. 그러면서 일영에게 위기가 찾아옵니다. 엄마의 보호, 가족이 생존을 보장하지 않고 그녀의 생존을 위협하게 됩니다. 사실 이는 얽히고설킨 오해에 가깝지만 일영은 또다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게 됩니다. 어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탁에게 붙잡혀 트렁크에 갇히면서 (보관함에 갇히고 캐리어에 갇혔던 이전의 연장선) 나오는 장면은 그녀의 처절한 생존욕구를 잘 보여줍니다. (개인적으로 이 시퀀스의 편집연결이 정말 좋았습니다.) 결국 그녀는 살기위해 이전에 그랬듯이 인천 차이나타운의 엄마의 집에 찾아갑니다. 어린 일영이 집을 찾아갔던 이유는 엄마의 보호 아래에서 생존을 보장하기 위해서였었다면, 성인이 된 일영이 집을 찾아간 이유는 엄마의 보호에서 벗어남으로서 생존을 보장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제부터 그녀는 "스스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아쉬웠던 점은 영화 전반에 “달콤한 인생”이 보입니다. 다른 세계의 신민아를 보고 이병헌이 느꼈던 그 감정선을 일영에게서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석현이 일하는 레스토랑에서 석현이 요리를 하는 모습을 쳐다보는 일영의 뒷모습을 트랙인(달리인)하는 장면은 달콤한 인생에서 녹음실에서 연주하는 신민아를 쳐다보는 이병헌의 뒷모습을 트랙인(달리인)하는 장면과 감정선부터 표현방법까지 완전 같습니다. 하물며 그때 나오는 현악기로 이루어진 OST까지 비슷합니다. 거기다가 엄마와 일영의 관계는 김영철과 이병헌의 관계가 좀 더 가족적으로 발전된 모습으로만 보입니다. 그리고 이야기의 구성면에서 석현의 죽음까지는 비교적 짜임새 있고 탄탄하고 깔끔하게 느껴지지만 그 이후부터 무언가 느슨하며 신파적이고 깔끔하지 못합니다. 살기위해 가족을 전부 죽여야 하는 그런 상황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 취향의 방식은 아니었습니다.

     연기들은 정말 좋았습니다. 특히 여자 배우가 메인이면 뭔가 약하고 영화가 잘 안 된다는 한국영화계에 팽배한 귀납적 인식에 도전한 점이 좋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일영 역을 맡은 김고은 분은 정말 크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김고은 분을 좋아해서 하는 소리가 맞습니다. 엄마 역의 김혜수 분은 "나 이대 나온 여자야" 같은 기존의 이미지와 확연히 달라서 과연 어울릴까 싶었지만 극 속에서 그런 이미지들은 생각이 나지 않게 정말 존재감 있게 잘 소화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치곤역을 맡은 고경표 분의 연기가 저는 좋았습니다. 사실 고경표 분을 보면 SNL이 먼저 떠오르기 마련인데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고 살짝 중국느낌의 신세대 깡패느낌을 잘 살렸다고 생각합니다. 다들 잘했지만 그와중에 그래도 베스트를 뽑자면 저는 홍주 역의 조현철 분이었습니다. 처음엔 진짜 약간 정신이 안좋으신 분을 모셔왔나 했을 정도로 진짜인 것만 같았던 연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