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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미친것도 이정도면 예술이다

리뷰입니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있으니 주의해주세요.

     매드맥스의 이야기는 단순하다. 시타델에서 출발해서 동쪽 Green Place(한국어 번역은 녹색의 땅)를 찍고 다시 서쪽 시타델로 돌아가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런 단순한 이야기와는 달리 그 이야기에 내포된 서브텍스트는 단순하지 않다. 매드맥스는 역사이자 종교이다.

     대사 없이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다는 조지 밀러 감독의 말에 따라 대사는 억제되고 액션이 강조되어있다. 하지만 절제된 만큼 역설적으로 대사 하나하나가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 워보이들이 매번 죽기전에 습관처럼 외치는 말이 있다. "Witness me!" 이는 한국어로 기억해둬 즈음 으로 번역되지만 직역하자면 "나를 목격하라"가 된다. 이는 목격에 의해 역사가 쓰여진다는 관점에서 보면 꽤나 의미심장하다. 눅스는 영화 초반 슬릿과 다투면서 출전하길 원하며 이렇게 말한다 "I will be historic on the fury road." Furiosa(퓨리오사)와 fury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결과적으로 눅스는 퓨리오사의 도로에서 역사가 되었으니 그 뜻을 이룬샘이다. 구성적으로 영화는 마지막에 인용구로 끝을 맺는데 이또한 영화가 어느 한지점에서 과거를 돌아보고 있는 역사라는 점을 암시한다. 이런 과거를 돌아봄은 성경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기도 하다. 

“Where must we go,
we who wander this wasteland,
in search of our better selves.”
-The First History Man[각주:1]

     녹색의 땅에 가는 길에 맥스가 퓨리오사에게 물어본다. 이 사막에서 너가 찾는게 무엇이냐고 그러자 퓨리오사가 말한다. "Redemption(구원)" 모든 종교에서 구원에 대한 대답은 필수적이다. 이에 대해 기독교에는 희생이라 대답한다. 예수는 그 자신을 희생하여 인간을 그 원죄로부터 구원해주셨다는 기독교 이야기가 있다. 이런 예수적 이미지인 희생과 구원은 이 작품의 여러 인물을 통해 등장한다. 우선 녹색 땅의 많은 어머니들(Many Mothers of Green Place)을 생각해보자. 그들의 대다수는 시타델로 돌아가는길에 본인을 희생한다. 이번엔 눅스를 보자. 그는 임모탄 조의 밑에서 발할라[각주:2]에 들어갈 구실만 찾았다. 하지만 그는 fury road에서 위의 인용구에서 말한 더 나은 자신(better self)를 찾았다. 그리고 희생한다. 그는 예수가 되었다. 혹자들은 맥스가 처음 피주머니가 되어 차 앞에 묶이는데 이를 보고 십자가를 앞에 붙힌 한국 기독교 차와 연관시킨 개그글을 올리는데 사실 그 이미지를 정확히 봤다. 이는 실로 예수의 이미지이다. 맥스는 눅스와 퓨리오사에게 자신의 피를 나눠준다.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가 나의 살과 피를 마셔라라고 하는 것과 이에 천주교에서 미사 시간에 포도주를 예수의 피라고 마시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 예수의 이미지가 명확하다. 퓨리오사를 보자면 그녀는 출애굽기(혹은 탈출기)의 모세와 같다. 모세는 이집트에서 노예 유대인들을 데리고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하고, 퓨리오사는 시타델에서 임모탄의 아내들(성노예)을 데리고 녹색의 땅을 향한다. 시타델로 돌아갈때는 홍해의 기적과 같다. 바다를 가르고 이를 모세와 유대인들이 지나간 후 이집트인들이 발을 들이려하자 그 갈라졌던 홍해가 닫혔던 이미지와, 맥스와 퓨리오사 일행이 적군을 가로질러서 정면돌파한 후 눅스의 폭발로 닫히는 협곡의 이미지는 동일하다.

     인물을 보자면 맥스와 퓨리오사는 철저히 상호 보완적이다. 처음 맥스와 퓨리오사가 만나는 장면에서 맥스는 무기를 가지고, 퓨리오사는 차 운행권을 가지면서 서로 상호보완적 대립관계를 시작한다. 하지만 협곡에서 퓨리오사가 차 시동을 거는 방법을 맥스에게 알려주고, 맥스는 돌아온 퓨리오사에게 총을 나눠줌으로써 상호보완적 대립관계는 동등한 위치에서의 상호보완적 동맹관계로 발전한다. 이후 녹색의 땅에 도착하기까지의 전반부는 퓨리오사가 액션의 주체적 인물이 된다. 맥스는 이러한 퓨리오사를 보완하며 반 발자국 떨어져서 보조해주는 역할처럼 보인다. 이때문에 혹자들은 맥스가 공기화 되고 퓨리오사가 주인공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러한 맥스의 보조화는 철저히 계산된 부분인데, 어느정도인가 하면 어두운 밤에 맥스가 총알농부를 처리하러 갈때조차 단독으로서의 그의 액션은 한 장면도 보여주지 않고 카메라는 퓨리오사에게 머물러있다. 한 템포 쉬는 영화의 흐름과도 닿아있지만 이는 맥스의 주도적 액션을 배제한 연출이기도 하다. 대조적으로 녹색의 땅에 도착하고 갈 길을 잃은 퓨리오사에게 맥스가 길을 제시해준 이후부터는 맥스가 액션의 주체적 인물이 된다. 봉대에 매달리고, 사슬 끊고 등등. 이렇듯 주보조가 있을지언정 그들은 만나고 헤어지는 순간까지 상호보완적인 인물임을 잊어선 안된다. 맥스와 퓨리오사는 위의 스틸컷처럼 서로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준다. 하지만 둘은 근본적인 차이점을 가지고있다. 맥스는 고독한 떠돌이 사무라이와 같은 유형이고 퓨리오사는 남을 이끄는 리더이다. 그렇게 둘은 다시금 본래의 위치로 갈라지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1. 극장에서의 한국어 번역은 "희망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위해 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 -최초의 인류 라고 되지만 더 나은 뜻을 전달하기 위해 직역해보자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하는가, 이 황무지를 해매는 우리는, 더 나은 우리 자신을 찾기 위하여" -최초 역사의 인류 가 된다. [본문으로]
  2. 북유럽 신화에서 용맹히 싸우다 죽은 전사들은 오딘이 기다리는 아스가르드의 발할라로 갈 수 있다고 한다. 매드맥스의 발할라는 이를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워보이(Warboy)들이 왜 미친듯이 싸우다 죽고 싶어하는지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고도 용어하나로 합리화하는 설정, 영화적 장치라고 할 수 있다. 한국어 번역은 맨 처음 "전사의 천국"이라 번역되며 이후 계속 "천국"으로 번역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