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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소설 <스타쉽 트루퍼스>

                               

리뷰는 아니고 간단평입니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해주세요.

     오늘날 외골격이라는 이름으로 발전하고있는 강화복들은 이 소설이 없었다면 나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소설 <스타쉽 트루퍼스>는 인류 역사에서 "강화복"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했다. 밀리터리 SF소설 <스타쉽 트루퍼스>는 유명SF작가 로버트 A. 하인라인의 대표작이다. 무려 1959년에 "강화복"을 처음 도입했던 이 소설은 1960년에 양대 SF상 중 하나인 휴고상을 받았다. (다른 하나는 네뷸러상) 이 소설로 인해 "밀리터리 SF"라는 장르가 생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게임, 영화, 만화 등 다른 매체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 유명한 작품이다.

     사실 소설의 이야기 자체는 간단한 편이다. 친구따라 군대에 입대했다가, 가장 빡쌘 기동보병(Mobile Infantry)에서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성장. 정말이지 이게 전부이다. 상당부분이 "군대는 사랑입니다" 정도의 군대에 대한 찬양(사실은 군복무에 대한 찬양)을 포함하는 로버트 A. 하인라인의 열렬한 설교와 사상, 그리고 미래 세계관을 묘사하는 것으로 채워져있다. 혹시 많은 전투씬을 기대하는 독자가 있을지 모르지만, 전투씬 같은 경우에는 소설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이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역사와 도덕 철학' 수업시간의 설교 탓에 작가가 군국주의를 미화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논란을 낳기도 했다.

     이 소설 속 세계는 두 계급으로 나뉘는데 민간인이라 불리는 군대를 안간 사람과 군대를 갔다온 사람이다. 이 둘이 가지는 권리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는데 다만 군대를 다녀온 사람에게만 투표권과 참정권이 주어진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점은 제대를 해야지만 투표권과 참정권이 주어진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정작 군인의 상태에서는 정치 참여나 투표도 할 수 없다. 보통의 군국주의 국가는 최고 지도자부터 그 수뇌부가 군인인 혹은 군인인척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군국주의가 아닌듯 보인다. 더불어 징병제가 아닌 모병제를 하고 있는 세계이니 더욱 그렇다. 오히려 극단적인 자유주의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데 자유를 지키기 위해선 전쟁이란건 피할 수 없다는 것이 핵심 내용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소설 속 인류의 적인 벌레같이 생긴 외계인 "아라크니드"를 공산주의의 궁국적인 모습이라고 하는(정말 소설에 그렇게 적혀있다)것을 보면 공산주의에 맞서 싸울 수 밖에 없는 자유주의 진영을 SF에 빗대 그리는 것 같다. 전쟁은 피할 수 없고 전쟁이 나면 결국 군인이 필요한데, 자신의 자유의지로 군대를 다녀온 사람만이 진정한 시민으로써 권리를 누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이 소설의 생각인 것 같다. 이 점은 사뭇 그리스 시대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 그리스 시대에는 군대를 간 성인 남성만이 민주주의에 참여할 수 있었다. 물론 이 소설에서는 여성도 군대에 얼마든지 참여할 수 있다는 차이는 있다. 개인적으로 느낀 바로는 해군사관학교 출신인 작가가 이 소설을 쓸 때 화가 많이 났던 것 같다. 전쟁이나 군대에 뭐하나 알지 못하면서 평화로운 곳에서 입만 놀리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같은 것 말이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의 입(참정권과 투표권)을 아예 틀어 막아버리고 싶었던 것 같다. 근데 사실 이러한 로버트 A. 하인라인의소설 속 주장은 쉽게 반박이 가능하다. 과연 정치인들이 투표권도 없는 민간인들의 사정을 봐가면서 정책을 낼까? 인류 역사상 참정권이나 투표권같은 권력이 주어지지 않은 사람에게 기본권이 보장된 적이 없다. 사실 민주주의는 당연한 기본 권리가 아니라 피의 투쟁의 결과이다. 그러니까 <스타쉽 트루퍼스>의 민간인들에게 참정권과 투표권만이 제외된 다른 모든 권리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은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이상론에 불가하다. 이렇게 적고 보니 이 소설이 재미없는 철학서적처럼 느껴지지만 이런 부분 조차 상당히 재미있게 써놓은 책이다. 국가, 정치, 시민의 관계에 대한 복잡한 생각조차 재미있게 서술가능 하다는 것이 작가의 최고 재능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예전에 한 블로그에서 영화 <스타쉽 트루퍼스>의 리뷰를 본 적이 있다. 거기에 게임 <스타크래프트>와 너무 유사하다는 평이 있었다. 소설 <스타쉽 트루퍼스>는 1959년에, 영화 <스타쉽 트루퍼스>는 1997년에, 게임 <스타크래프트>는 1998년에 나왔는데 말이다. 게임 <스타크래프트>가 소설과 영화에서 양쪽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게임 <스타크래프트>의 크레딧 롤 Special Thanks에 "로버트 A. 하인라인"이 올라가있으니 말 다했다고 봐야겠다. 소설 <스타쉽 트루퍼스>는 유명 애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원래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이 강화복을 그리고 싶었으나 스폰서인 반다이 측에서 로봇이어야한다고 하는 바람에, 강화복에서 확장된 Mobile Suit가 탄생한 것은 이미 유명한 사실다. Mobile Suit와 기동보병(Mobile Infantry)이 입는 강화복(Powered Suit)과의 이름 상의 유사점은 보너스. 그리고 이 작품과 완전히 반대점을 지향하고 있는 밀리터리 SF 소설 <영원한 전쟁>도 있다.